양말도 죄도 없이 - 생활의기억


한쪽 발만 내동댕이치듯 벗고 누운다고 했을 때 내가 버린 것은 벗어 놓은 신인가? 아니면 여전히 신을 신은 발인가? 부족하고... 어설픈 느낌이 누운 나를 누른다. 사실 잘못은 없다. 이번 씬은 그냥 그렇다. 내가 한쪽 발을 벗고 눕든 두쪽 발을 벗고 눕든 그냥 그렇듯이 그냥 그렇다. 이 씬은 그냥 그래서 못된 년도 없고 못된 놈도 없어. 시쳇말로 엠에스지가 없지. 아무런 죄책도 짊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토록 시시하다. 더 많은 안되고 못된 일들을 위해 간단한 죄책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이 시시하고 안된 것들을 덮게.

왕좌의 게임 시즌3(2013) -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 허구의잔영

묘하게 어울리는 '킹슬레이어' 자이메와 '불통' 브리엔느
- 라니스터는 진짜로 빚을 갚았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보통 티리온 라니스터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 같다. 이번 시즌에서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도 티리온 라니스터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이 아닌가 한다. "복수를 해서 한 놈을 죽이면 복수심을 가진 적 두 놈이 생긴다고." 복수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 중 단연 매력적이다. 의미있고 극렬하다. 극렬한 데에는 호불호가 갈릴지 몰라도 어쨌든 사람이라면 대부분 의미있게는 살고 싶어한다. 그런 점에서 복수심은 많은 사람을 뭉치게 할 수 있는 큰 힘이기는 한데

그러나 한편 복수심을 명분이자 구심점으로 하는 연대는 뭐랄까, 복수심이란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데다 변덕 심한 감정에 불과해서 그런가, 뭔가 실재하는 사람이나 유일신 같은 것을 구심점으로 하는 연대보다는 상당히 취약하지 않은가 싶다.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이 가진 '정통성'이라는 명분이 얼마나 강한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복수의 정도가 달라서 사람 사이의 연결이 취약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예컨대 롭 스타크가 생각하는 복수의 정도와 리카드 카스타크가 생각하는 복수의 정도는 달랐다. 그들의 복수심은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연결고리를 잃은 롭 스타크와 그의 군대는 누가 먼저냐만 다소 달리했을 뿐 모두 죽고 말았다. 고대늑대까지... 흑흑... 복수의 또 하나의 문제는 이처럼 풀 한 포기 남는 게 없다는 것이고 더 큰 문제는 완벽한 복수일수록 남는 것 하나 없는 바로 그 지점을 지향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너 죽고 나 죽는 게 가장 완벽한 끝이다. 그런 것은 너도 나도 바라지 않음에도.

복수심 무용론은 여기까지 하고, 롭 스타크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서 아쉬운 점은 있다. 롭 스타크는 집단의 복수심을 하루빨리 자기에 대한 충성심으로 이양하는 편이 좋았다. 그러려면 롭 스타크 자신이 누구보다도 분노해야 했고 누구보다도 강인해야 했다. 롭 스타크가 아리아 스타크만큼의, 아니 산사 스타크만큼의 복수심이라도 가졌더라면 바로 눈 앞에 떠오른 수단과 방법을 사랑이란 미명 하에 저 좋을 대로 애매하게 묻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긴 캐틀린 스타크가 자이메 라니스터를 풀어 준 동기와 경위를 보면 그녀의 아들인 롭 스타크가 그 무른 점을 빼닮았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보면서 둘 다 똑같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다. 물론 이해는 할 수 있다. 둘 다 참으로 인간적이다. 복수심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인간성의 컨트롤을 받아야지 과하면 더럽다. 테온 그레이조이가 당하는 꼴을 보면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

뉴 시즌에서 되살아난다는 레이디 스톤하트(a.k.a. 캐틀린 스타크)
- 아 목...목이 아파 보여...

캐틀린 스타크 같은 사람은 이처럼 한 번 죽고 인간성도 더불어 잃고 나서야 완벽하고도 분명하게 어그러진 복수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즉 죽었다 깨어나야 된다는 것. 그나저나 캐틀린 스타크가 죽었다 깨어난 모습이 북벽 위쪽의 아더들이랑 비슷한 것이, 빛의 신인지 불의 신인지 뭔지가 저 아더랑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새 시즌에는 아더 비슷하게 된 모친을 등 뒤에 두고 아더들을 향해 제 발로 가고 있는 '워그' 브랜 스타크의 활약을 보는 맛도 있을 것 같다. 조젠 리드 남매라는 사람들의 출처가 어디인지도 알고 싶고.

한편, 스타크 가와 라니스터 가의 강력한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 얼음은 존 스노우요 불은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이라는 것 같다. 그렇다면 둘이 주인공? 존 스노우는 인생 최초로 배신 한 번 하고 겨우 목숨만 건진 채 막 북벽을 밟았고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은 아직 웨스테로스 땅을 다시 눈에 담지도 못했는데 얼마나 대작이 되려고(이미 충분히 대작인데) 그러는지 모르겠다. 시즌3이 되도록 이 두 사람의 인물로서의 입체감조차 거의 드러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게임판인 웨스테로스에 아직 안 들어와서 본색이 미처 드러나지 않은 것일 수는 있겠다. 두 사람이 본색을 두르고 게임판의 양 끝을 밟을 새로운 시즌을 기대한다. 4월 초에 시작이라는 것 같다. 

겨울왕국(Frozen, 2014) - 내 심장도 녹았다 - 허구의잔영

아름다운 엘사

(제일 늦게 본 것 같지만 아무튼 스포일러 있습니다) 클라이막스 훨씬 전에 벌써 나는 녹았다. 참, 미리보기 문제도 있고 하니까 먼저 제목 얘기부터. 제목 때문에 나는 이 왕국이 처음부터 겨울이라든가 뭐 그런 얘기인 줄 알았다. 생각해 보면 겨울인 나라에서 얼음을 캘 이유가 없지만 워낙 눈치가 없어서... '눈의 여왕'이라는 제목이 더 좋았겠지만 그러면 안나가 주인공에서 너무 멀어지고 또 이미 같은 제목의 명작이 있으니까. '겨울왕국'이라는 제목도 희대의 명작다운 좋은 제목인 것 같다. 어감도 아름답고.

그리고 녹은 얘기. 눈사람 만들래?부터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부모님은 왜 이렇게 부질없이 죽는단 말인가. 왕좌의 게임 시즌3을 얼마 전에 다 봐서 부질없는 죽음에는 면역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그 다정한 부모님이 부질없이 죽는 것은 너무 슬펐다. 그리고 그 후 계속되는 눈사람 만들래?에서 정말 울어버렸다. 오프닝의 미키처럼 스크린을 찢고 들어가 같이 놀아 주고 싶은 마음. 쌓인 눈 없이 눈사람을 만들어 주진 못하지만...

안나의 행동력과 따뜻한 마음씨는 마치 마법같다. 그래서 그녀가 타이틀 롤이겠지. 그러나 익숙한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테너-바리톤의 작법상 소프라노는 아무래도 엘사고 대표적인 아리아도 엘사 꺼고, 그래선지 엘사가 더 타이틀 롤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엘사는 아름답고 독립적인 데다 이제 사랑도 깨달았다. 결론은 둘 다 짱짱걸.

어쨌든, 잠깐일지 몰라도 다시 녹은 심장을 갖게 되어 기쁘다. 누구나 심장에 얼음 하나씩은 있잖아요.

+)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는 원제를 직역했는데도 느낌이 착착 들어맞는데('게임' 부분이 똑같지만) 얼어버린 왕국-Frozen은 왜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걸까. 얼어버린 왕국이라니 이건 흡사 재난영화...

+) 한스가 배신하거나 배신당해 죽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긴 했지만 그렇게 지독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 배신을 해도 형들 중 하나가 이 왕국 통째로 들어먹자고 찾아온다거나 해서 어쩔 수 없이 배신할 것 같았다. 왜냐면 그는 동물과 잘 지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동물과 교감하는 사람 중에 악역은 없는데.
콩이~
콩이와 교감하는 내가 나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헿헤

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 생활의기억

성폭력사건을 전담하는 재판부 일을 맡아서 한 게 근 1년쯤 되었다. 이제 한 달 정도 일을 더 하면 여기서 떠난다. 총평하자면 상대적으로 재판이 많은 부서였다. 성폭력사건의 형량이 늘어난(이전 법에 비하면 '증폭' 수준이다) 후로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피고인의 수도 증폭되었고, 재판 시간도 더불어 증폭되었다.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면 간략히 증거를 조사하고 그에 기반해서 판결문을 쓰면 끝인데, 공소사실을 부인하면 길어지기 때문이다.

성폭력재판의 개요:
-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부인하면 수사기관에서 피해자나 참고인이 진술한 것을 그대로 증거로 쓸 수가 없기 때문에 피해자나 참고인을 증인으로 불러 법정에서 신문하게 된다.
- 만일 증인으로 나와야 할 피해자가 청소년이거나 장애인이라면 가급적이면 피해자를 증인으로 부르지 않고, 대신 수사기관에서 녹화해 두었던 피해자의 진술녹화 동영상을 법정에서 재생하는 방법으로 조사한다.
- 피해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피해자의 부모나 전담 상담사가 진술녹화 당시 동석하였다가 나중에 피해자 대신 증인으로 출석해 법정에서 진술녹화 동영상을 같이 보고, 편집이나 개작 없이 그대로 촬영되어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증언한다. 그대로라고 하면 이로써 진술녹화 동영상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재판 중 겪는 3단 멘붕:
- 슬프게도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청소년이거나 장애인이고, 많은 경우 청소년인 동시에 장애인이다.
- 많이 좋아졌지만,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여전히 충분한 지지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피해자의 모친조차 피해 사실을 없었던 일로 하기 위해 피해자를 찍어누르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지지/보호받는 사람이 성범죄의 타겟이 되는 일 자체가 드물다.
- 그런 한편 대부분의 피고인들도 사회계층상 최약체다.

화/수/금요일에 재판을 하고 남은 날에는 사무실 책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데스크워크의 난이도가 높지는 않다. 지금처럼 가끔씩 시간이 나면 괜찮은가 하고 나의 내부를 살펴볼 때도 있다. 살펴보는 김에 물어본다. 배운 대로 화가 안 난 것처럼 가장해서 일을 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일에다 화를 좀 풀어 놓는 것이 좋은가.

당연히 내가 화가 나는 정도에다가 일을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사건을 보고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 수 있다. 그런데 기다려 보면 그와 비슷한 다른 어떤 사건은 더 화가 나는 또다른 사건에 묻히는 때도 있다. 화는 계량되지 않는다. 솔직히 내 감정이나 네*버 댓글러의 감정이나 엇비슷하지만 댓글대로 처리한다 치면 살아남을 사람이 드물겠고, 개화된 문명 국가에서 그럴 수도 없다. 그러나 어쨌든 인간이 인간에 관하여 하는 일이다. 형을 정할 때 피해자 측에서 화가 난 정도(피해감정)를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결국 내 화는 누르고 피해자 측의 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화를 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경우에는 어떤가. 어느 피해자는 지적장애가 너무 심한 나머지, 사건 후 석 달도 안 되어 피해사실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더 지니어스 시즌2 7화 - 원했던 과정, 원하지 않았던 결과 - 허구의잔영

"홍진호 2"

(스포일러 있습니다) 메인 매치 '신의 판결'에서 이상민은 우승에 가장 먼저 다가섰고 나아가 우승을 쟁취했다. 유정현으로부터 본의 아닌 방해를 받았지만 또한 본의 아닌 큰 도움도 얻어, 이상민은 결국 우승에 필요한 all 5, all 6 주사위를 손에 넣는다. 이제 그의 목표는 홍진호의 공동우승을 막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것이 성공한다. 

홍진호는 all 6 주사위를 만들기는 했다. 이는 홍진호가 이상민을 제외한 플레이어들 중 누구보다도 우승에 가까워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이상민의 의도적 방해 + 시간부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3 and 4 주사위를 만들지 못한 채 신의 판결을 치르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홍진호는 생명의 징표를 얻지 못했다. 이로써 이상민은 목표했던 모든 바를 이루고 거의 완전한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

+) 40장의 카드 더미를 갖고 하는 데스 매치 '인디언 홀덤'. 홍진호가 여기서 카드 더미 암기법으로 승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칩이 필요했다. 칩을 15개씩만 갖고 시작하기로 한 그 시점에서, 홍진호/은지원 중 어느 일방의 생존 확률은 공히 50% 가까이로 수렴하고 만다.

+) 지니어스 한 명의 확률(신)에 대한 투쟁기는 이렇게 끝났다고 합니다.

근래에 먹은 풀떼기 - 생활의기억

주2~3회 정도 저녁밥 대신 풀떼기+약간의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을 먹고 있다. 혼자 100년 동안 살 작정이냐는 핀잔도 들었지만서도... 덕분에 짠 걸 덜 먹게 되는 건 확실하고, 체중도 줄고, 회식 등으로 인해 과식하더라도 다시 풀떼기를 먹어 주면 걱정없다. 헤헤. 위 사진은 언젠가 만들어 먹은 샐러드 우동이다. 멸치액젓과 매운 건고추를 넣어 우동을 한 번 끓여냈다가 건진 다음 올리브유에 휘휘 볶았다. 그담엔 보시는 바와 같이 풀 속에 떨어뜨린 다음 먹어 보았다. 계란은 보너스.
리코타 치즈를 가장한 두부 샐러드... 언젠가의 점심 때 어떤 분이 주신 치즈베이글을 넣어서 만들었다. 내가 있는 곳은 벽촌이라서 마트에서 연두부 사기도 쉽지 않다. 이렇게 식재료 사기가 힘들어서야. 그나마 부드러운 찌개용(ㅠㅠ) 두부를 빻은 다음 익히면서 물기를 좀 날리고, 후추랑 코리앤더가루(이런 건 당연히 인터넷으로 주문했다)를 약간 쳐서 얹어 먹었다.
다이어트 메뉴의 정석. 동원 훈제 닭가슴살과 집에서 공수한 올리브를 넣은 샐러드입니다. 지금 보니 볼의 물기를 덜 닦았다. 이럴 수가ㅠㅠ 참고로 저 샐러드볼은 탈수기의 겉그릇이다. 샐러드볼도 되고 탈수기도 되는, 풀 먹는 자취생의 필수 아이템. 
데친 산나물이랑 겨자잎을 무쳐서 바나나 등과 함께 먹어 보았다. 무침양념은 무지방 오리엔탈 드레싱에 참기름을 엇비슷한 비율로 섞은 것이다. 굳이 무지방 드레싱을 사 놓고 거기에 기름을 첨가하다니 뭐 하는 짓인가 싶지만 시판되는 어중간한 지방 드레싱보다는 좀더 맛있다. 정말입니다. 아예 드레싱도 직접 만들어 먹으면 더더 맛있겠지만 일단은 이 정도로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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